이야기 하나
충무로에서 카린과 점심먹기 -> 인천공항 가서 이모님과 누님 맞이하기 -> 종로에서 닌아 팬미팅(?) 참석 -> 양재동 가게에서 마감 도우미 -> 강남역에서 한밤 중 가게 회식.
내가 미투데이에 기록한 3월 14일의 일과표이다. 스스로 “연예인 스케쥴”이라고 칭한 일과표. 그리고 지금도 그 후유증 때문에 골골대고 있다. 이 중에서 앞의 세 스케쥴은 기다리는 데에 일정한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약속 등이 있으면 못해도 10분은 일찍 도착해야 기분이 편해지다보니, 딱 맞춰 도착하게끔 집에서 출발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이 날도 마찬가지였다. 짧게는 10분, 길게는 한 시간을 기다리는 데에 사용했으니까.
이야기 둘
여러분은 기다리는 시간 동안에 무엇을 주로 하시는지? 간단히 전화통화 및 문자 등으로 시간을 보내는 분도 있겠고, MP3P가 있으면 음악을 들으며 주변 풍경을 살펴볼 것이고, NDS나 PSP가 있다면 게임을 하면서 빠르고 정신없게 시간을 흘릴 수 있고…… 카메라를 갖고 있는 나는 기다리는 중간중간에 주변풍경을 찍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호한다.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기다리던 사람이 나타나면 그 분을 향하여 카메라를 들이대는 정도의 센스! “형왔다”는 광고 한 번 참 요란하게 하십니다요.
하지만 전화기, MP3P, 게임기, 카메라 등등이 시간을 때우는 데에는 도움이 될 지언정, 초조함을 달래는 데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특이하게도 나는 사업 등을 목적으로 만나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같이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들며 놀기 위함으로의 만남을 기다리는 것에 더욱 두근거림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사실은 사업상으로 누굴 기다려본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이야기 셋
특히나 이역만리에 떨어져지낸 가족을 기다리는 부모님의 심경은 과연 어떠했을까. 2년 전 어머니와 인천공항에 왔을 때, 어머니는 너무도 보고싶어하는 마음에 비행기가 도착하는 시각보다 무려 1시간을 일찍 맞추어 인천공항으로 출발하자고 보채셨다. 그 날은 수속 등에 시간이 걸려 무려 2시간을 인천공항에서 꼼짝않고 지내야 했다. 나는 그 때의 어머니의 표정을 볼 여유가 없었다. 어머니가 한참동안 긴장해하신 것 – 이라고 추측할 뿐이지만 – 에 비해 나는 기다리는 시간을 짜증과 공포로 보내야 했으니까. 부모마음을 자식이 어떻게 헤아리겠냐고. 특히나 가족과의 정에 별 신경을 안 쓰는 나같은 아들이라면야.
그래도 2년 전의 실책(?)을 거울삼아 올해에는 비행기 도착시간보다 15분 정도 늦게 도착하는 센스를 발휘하신 우리 부모님. 나는 따로 인천공항으로 출발해서 도착시간에 맞추어 인천공항에 안착했다. 하지만, 작년과 마찬가지로 수속에 시간이 걸렸고 부모님은 그 새를 참지 못하고 입구 가까운 곳에서 나의 이모님과 누나를 기다리셨다. 그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분명 많은 기대를 하셨으리라. 먼 길에서 자식이 일시적으로나마 돌아왔는데, 기대를 안 하는 부모님은 없을 듯? 아주 극소수를 빼면.
이야기 넷
우리는 항상 기다림과 설레임 그리고 초조함이라는 굴레에 살고 있다. 위에서 한참 적어놓은 사람과의 만남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했을 때, 입사원서를 내고 발표를 기다릴 때, 멀리 떨어져있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의 답장을 기다릴 때 등등. 하다못해 블로그에 답글이 달리기를 기대하는 것도 기다림에 포함될 수 있겠지? 초조함을 달래는 방법도 각양각색이며, 설레임을 표현하는 방식도 수천가지이다. 아무래도 기다리는 대상의 무겁고 가벼움에 따라서 달라지겠지? 기다림이 만남으로 바뀔 때에 나오는 웃음, 어긋남으로 바뀔 때의 쓴웃음 까지. 그것을 표현하는 표정도 천차만별.
오늘도 나는 기꺼이 기다림의 굴레에 몸을 맡긴다. 만남으로 이어지던, 어긋남으로 끝나던. 결론은 둘 중 하나일 테니까. 그래도 나는 초조함이 가져다주는 긴장감을 살짝이나마 덜어내면서 설레임이 안겨줄 느낌에 취하고 싶다. 만남에 기뻐하고 어긋남에 슬퍼하는 것은 그 때의 상황에 맡겨놓기로 하자.
물론, 욕심이라면 만남이 이루어져서 한없이 기뻐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