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irway

아무 이유 없이 9500번 좌석버스에 몸을 실었다. 어떻게든 좋았다. 누구를 만나기로 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무작정 떠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인천 부평역. 이후의 여정은 말 그대로 발이 가는 대로였다. 부평역의 번화가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린 나는 역에서 2분 거리는 기본으로 떨어져 있는 횡단보도를 지나 부평역을 건너 남쪽 출구로 향했다. 처음에는 남쪽 출구가 어디였는지도 몰랐다. 길을 가던 아저씨가 남쪽 출구가 이쪽이 맞느냐 물어보길래그 곳이 남쪽 출구였구나 하고 깨달았을 뿐이니까.

번화가인 북쪽 출구에 비해 남쪽 출구는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전형적인 도심 외곽의 소규모 시장골목의 모습이었다. 판자집도 보였으며, 대충 만든 것 같은 건물에서 운영하는 맛집도 보였다.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걷다 보면 생각에 미칠 것이고, 그 생각을 기억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걷기를 10분 정도, 골목 사이를 정신없이 돌아다니면서도 부평역이 가리키는 방향은 계속해서 머리속에 남겨놓았음을 깨달았다. 어느 순간에 “어? 내가 어디 즈음에 온 거지?”하는 불안한 마음이 생길 줄 알았는데, 그러한 느낌이 나지 않았다.

부평역이 있음직한 곳을 끝까지 기억해내며, 얼마동안인지 모를 시간을 걸어간 끝에 나는 다시 부평역에 도착했다. 어차피 다시 찾아야 할 곳이었고, 내가 있고자 했던 장소는 북쪽의 번화가였지 남쪽의 민가는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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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길을 잃지 않고, 가고자 했던 곳을 다시 찾을 수 있었을까. 예쩐에는 그저 내 방향감각이 좋아서, 아니면 많이 오간 곳이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종로나 강남 등의 번화가는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 아니면 유명한 상점 몇 곳만 알아도 약속장소를 찾아가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다. 대학을 다니면서 이러한 장소를 목적도 없이 혼자 수십 번 걸어다닌 경험이 무의식적으로 기억에 남은 것이었다. 물론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곳이라면 찾는 데에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이 날은 뭔가 달랐다. 나는 역에서 벗어나 더 먼 곳으로 걸어가지 않았다. 더 먼 곳으로 방황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내가 지키고 있던 것들 – 이를 테면 친구, 직장, 돈 등 – 에서 자유로운 상태였다면, 굳이 방향감각 따위에 의존하지 않고 특정한 목적지 없이 밤 늦게 방황했을 것이다.

매일같이 “난 언제나 외로워. 그래서 방황하는 거야. 살고 있는 가운데에도 머리속은 언제나 방황하고 있어”라 스스로를 각인해왔다. 근데…… 사실이 아닌 것 같다. 내가 과연 방황하고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떠돌고 있더라도 – 지켜보는 사람들이 인정하던 말던 – 내가 지키고 있던, 혹은 나를 둘러싼 것들에서 벗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만약에 내가 정말 방황을 원하고 여행을 원했다면, 매일같이 값싼 노동력을 곱씹어가며 출퇴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지겨워하던 지벵 들어가지 않고 누구와 같이도 아닌 나 혼자만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것이 나를 소위 말하는 “길치”로 만들지 않게 한 것 같다. 자의건 타의건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것은 나를 현재의 위치에 붙들어 놓았으며, 내가 있던 곳을 벗어나고 싶어해도 그것에서 누렸던 편안함 혹은 익숙함이 나를 먼 방향으로 이끌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방황을 말하고 생각하며 실천하려 하지만, 나의 현재는 아직도 정착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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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나도 제대로 된 방황을 하고 싶어. 방황의 궁극적 목표가 또 다른 곳에 정착하는 것이라 할 지라도.

그런데…… 나 정말 방황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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